오늘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연극 <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>를 보고 왔어요
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,
몰락과 환상, 욕망과 현실이 충돌하는 인간 내면의 드라마랍니다. 영화로도 너무 유명하고 이미 여러 번 연극으로 올려진 고전이죠.
이번 무대는 극단 툇마루가 선보였고,
제가 본 캐스팅은 방은희(블랑쉬), 이세창(스탠리), 박형준(미치), 서지유(스텔라) 배우였습니다.
특히 방은희 배우의 연기가 너무 깊고 섬세해서 공연 내내 눈을 뗄 수 없었어요.
1. 무대가 그려낸 욕망의 공간, 그리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춤의 무대
무대는 화려하지 않았지만, 그 안에는 인물들의 심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.
낡은 집, 흔들리는 전등, 어두운 그림자 하나까지 모두 의미가 있는 무대죠.
조명은 블랑쉬의 불안한 내면을 상징했고, 밝은 빛 아래 드러나는 진실을 그녀는 끝까지 외면하려 애쓰죠.
저는 예전 박해미 배우님의 연극으로도 봤었는데 이번 무대는 이전 연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상적인 무대가 또 하나 있었어요.
바로 무대 뒤 블랑쉬의 감정을 춤으로 표현하는 장면은 조금은 지루하고 평범한 고전 연극을 현대의 감각과 맞게 잘 표현해 주었어요.
춤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선과 동작이 슬픔과 욕망 그리고 아픈 블랑쉬의 감정을 너무나도 잘 보여줬답니다.
2. 배우들의 연기 몰입 그 자체 방은희 배우님께 놀라다
무대 위에서 가장 빛났던 건 단연 방은희 배우였어요. 딕션도 너무 좋으셨고, 블랑쉬 그 자체였습니다. 그 긴대사를 거침없는 연기로 다 쏟으셨고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너무나도 잘 표현해 내셨습니다.
연기를 잘하는 분인줄은 알았지만 연극무대에서는 처음 본 방은희 배우님을 봤는데 솔직히 아주 감동이었습니다.
그녀의 블랑쉬는 허영으로 무너지는 여인이 아니라,
상처와 외로움 속에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는 인간 그 자체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셨어요.
그리고 이세창 배우는 강렬하고 현실적인 스탠리를 완벽히 소화했어요.
사실 이 연극은 좀 워낙 고전이라서 조금 지루한 면이 있거든요. 그런데 이번 연극은 정말 1시간 40분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어요.
그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이세창 배우님가 연기한 캐릭터가 이전 스탠리배우와 전혀 달랐습니다.
스탠리 역에는 보통 좀 멋진 배우가 캐스팅 됐는데 말입니다. 하지만 이번 스탠리는 처음 등장하자마자 제 눈을 의심했어요.
이세창 배우님 이 역을 위해서 일부러 살찌우신 것 맞죠?
멋짐이라고는 일도 없고 그저 아주 나쁜 놈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나옵니다.
너무 악역으로만 표현돼서 그런지 오히려 극은 더 재밌긴 하더라고요. 이세창 배우님 칭찬입니다.
그의 육체적 에너지와 날카로운 대사는 블랑쉬의 환상과 현실을 정면으로 충돌시키면서 괴롭혔죠.
박형준 배우의 미치는 따뜻하지만 흔들리는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고,
서지유 배우의 스텔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물의 고뇌를 고스란히 보여줬어요. 서지유 배우님도 연극으로는 처음 본 것 같은데 연기를 아주 잘하시더라고요.
3. 여러분은 낯선 이의 친절에 얼마나 의지하시나요?
연극 <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>는 욕망 그 자체보다
욕망이 사라진 뒤의 인간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연극입니다.
방은희 배우의 눈빛 속에는
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, 잃어버린 존엄, 그리고 끝내 놓지 못한 사랑이 공존했어요.
그 연기가 너무 현실적이면서도 아파서
관객석에서도 함께 숨죽이며 그 감정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.
“나는 언제나 낯선 이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.”
이 마지막 대사가 끝나고 극장이 어둠에 잠기자,
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.
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옵니다.
4. 죽음의 반대말은 욕망 - 이 말에 공감하시는 분에게
연극 <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>는 단순한 고전이 아니라,
지금의 우리에게 묻는 이야기입니다.
지금 여러분들은 무엇을 꿈꾸며, 무엇을 잃고 살아가고 있나요?
방은희 배우의 눈빛 속에서 저는 욕망의 무게보다 더 깊은 인간의 슬픔을 봤어요.
연극이 끝나고도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했습니다. 그녀는 어디로 갈까요?
딱 이틀만 공연하는 것이 너무 아쉽네요.
전석매진할 만합니다.
올가을, 진짜 연극이 주는 감정의 밀도를 맘껏 느끼게 해 준 연극이었습니다.
모든 배우님들의 훌륭한 연기에 감사합니다.